내 유년시절의 단상

기억.jpg

안녕하세요. 라나입니다.
오늘은 여러 지인분들의 글을 읽어보고 제 과거의 단상들을 꺼내봤어요.
과거 무슨일이 일어났었는지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 기록을 하나씩 꺼낸다는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사실 이 그림은 제가 스팀잇을 접하고 처음으로 $0.07의 수익을 선물해준 그림이에요.
지금 이야기를 하는 시점에 이 그림이 제 단상의 이미지와 비슷한듯 하여 부끄럽게도 다시 올려봅니다. 제가 애정하는 그림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시부모님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된 선물을 드린 그림이기도 합니다. 그림이 흔들려서 조금 흐릿해 보이네요. 죄송합니다.

사실 얼굴까지 알려진 마당에 제 이야기를 글로 전하려는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길바닥에 갑자기 우스운 꼴로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아무도 모르는 분들께 내 이야기를 하는곳이 스팀잇이란 공간이었는데 지인분중 스팀잇을 하고 있으면 어쩌나, 날 알아보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듭니다... @myhappycircle님께 생각없이 댓글을 단 것 같아서 죄송한 기분이 들어요... 가입자 분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글을 일찍 터놓으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

내가 기억하던 유년시절은 집 한구석에서 종이위에 그림을 그리며 서로 이야기 하듯 놀던 시간들 뿐이다. 그런데 고모에게 우연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7살때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한글도 제대로 때지못한 7살짜리 아이가 동화책을 보더니 책에 있던 글을 공책에 옮겨 적고 있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시던 엄마와 고모 그리고 사촌언니는 이내 모든 동화책의 글을 공책에 옮겨 적는 날 보고 끈기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글을 필사한게 아니다. 글을 그림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정도로 난 그림 그리는게 좋았지만 남들보다 특출나진 않았다.

2000년도에 지구가 종말한다고?!

때는 1999년 언젠가 2000년에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는 사이비종교의 말에 그 말을 믿었다기 보단 어떤 내용인지 듣고 싶어서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가 어둑어둑 해질 무렵 학원이 끝나 친구와 집으로 가던 중이었는데 종말론을 말하던 사람들이 순진무구한 아이들 앞으로 온 것이다. 친구는 아무래도 이상하니 집으로 가자고 했고 난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그들을 따라갔었다. 이내 친구가 내 모습이 밟혀 우리 엄마에게 찾아와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 했고 , 바로 동네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동네 아줌마 아저씨 할 것 없이 나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고, 그것도 모르던 나는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 중 세탁소 아저씨가 나를 발견해서 아저씨 오토바이 뒤에 타고 집으로 갔다. 그때 나로인해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는 걸 알았다.
사실 그 교회 안에서는 아무일도 없었다. (간판에 교회라고 써져 있었다.)
그저 그분들이 제공해준 포도주스와 과자를 먹은뒤 개소리를 들은게 다였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건 그들이 만든 성경책을 보여주며 성경 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걸 보여주는 것 뿐이었다. 난 그때 그저 그렇구나만 연발했다. 그 개소리를 듣는 동안 부모님의 마음은 타들어간다는걸 생각하진 못했다. 개소리라고 하는 이유는 2018년인 지금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순진한게 아니고 멍청했구나 싶다.

학습속도가 너무 느렸던 아이

우리 동네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이리 똑똑한 아이들만 있었던건지 ;;;
초등학교시절 다른 아이들이 곱셈 나눗셈 하고 있을때 나는 덧셈 뺄셈을 겨우겨우 터득했다.
그러다 3학년이 되었을땐 갑지기 뇌가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똑똑해졌다는게 아니라 하나를 설명해주면 하나는 알게 되었다는 소리다.
전에는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도 모르던 아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보통이 되어갔다.

몸이 안좋았지만 아픈지 몰랐던 나

나는 어릴때부터 피부가 까만 편이었다. 그러다 가족 모두 건강검진 하러 간 날 심각한건 아니지만 가족 유전병이라면 유전병인 것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가 하도 어렸을때라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세달에 한번씩은 정기적으로 검진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몸이 아프거나 하는 반응은 딱히 없다. 근데 난 보험 커버도 안되는 약을 처방받으며 먹어야 했다.
그때 부모님의 걱정어린 시선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별일 아닌 일인데 가슴아픈 사연으로 남아버린 일이 되버린 이유는 못에 있었다.
지금은 왕래도 없지만 동네에 같이살던 또래 아이중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던 마음 안맞던 친구가 있었다. 심지어 같은 반은 왠말인지 ... 한번은 그 친구가 교실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야 XX이가 이런 병이 있는데 이거 전염되는거래."
순간 엄청 당황했다. 전염병도 아니고 딱히 아픈것도 아닌데 그 친구의 말이 내 가슴에 대못으로 다가왔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나에게 이 피를 준 엄마가 밉다고... 내 가슴에 박힌 못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준 꼴이 돼버렸다. 듣는 엄마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못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사진첩 속에 유독 까만듯한 내모습을 보면 속상하셨는지 엄마는 대부분 나의 10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없애버렸다.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에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있다. 나에게 건강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효도이다.

처음으로 내 꿈을 위한 반항

어릴때부터 유독 그림그리기를 좋아한 지라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함이란 그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아빠는 무조건 예고로 가야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그때가 고입을 앞둔지 100일 전이었는데 예고 준비를 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난 그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은게 전부였다. 사실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던 이유는 같은 반 중 머리도 좋고 그림도 잘그렸던 반장 덕분이었다. 그 친구는 내가 바라본 시선에선 완벽한 아이였다. 한번은 그 친구의 그림을 보는데 나보다 너무도 잘그려서 순간 너무 샘이났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고 싶었던건데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 단순한 아이었구나 싶다. 그때 부모님께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걸 처음으로 울면서 매달려봤다. 한번도 이런 모습을 보이던 딸이 아닌지라 부모님은 고등학교 진입을 문제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셨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미술 경로에 대해 부모님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고 자기 딸도 미술 준비한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지금 선생님의 딸은 내 베프중 한명이고 선생님은 내 친구의 아버지기도 하시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나 싶다. 아! 이 친구는 날 미술의 세계로 인도해준 친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설렘 그리고 학우의 자살

부푼 마음을 가지고 입학한 고등학교. 중학교때 친구들은 모두 여상으로 가고 나만 인문계로 간지라 모든게 걱정되고 한편으로 설레기도 했다. 그때 참 인상적인 친구 한명이 있었다. 얼굴도 예쁘장하고 머리도 똑똑했던 소녀. 레벨테스트 시간, 적어도 한장 분량의 영어를 외워 대화형식으로 진행하는 테스트였다. 한번은 그 친구와 같은 조가 되었는데 세상에 레벨테스트 20분 전인데 하나도 안외웠단다. 개인 테스트가 아닌 조별 테스드라보니 조마조마하는데 그 짧은시간에 그 많은 영어 문장을 다 외우고 테스트를 보란듯이 통과하는게 아닌가.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미술시간, 나무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그친구 그림이 아직도 생각난다. 이파리 하나 없는 가지만 무성한 무미건조했던 그림. 근데 꽤나 각인이 된 잘그린 그림이어서 아직도 뇌리에 깊게 박혀있다.
그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가 차가운 듯한 그 친구의 옆을 쉽사리 접근하기란 영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주저했다는게... 얼마후 그 친구는 자살했다. 10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 속상했다. 처음엔 믿기질 않았다. 그러다 그 아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걸 알아차린건 고등학교 입학시 사용한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 아이는 미소하나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그 친구는 중학교때 심한 왕따를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때 그녀의 부모님도 나름 각별한 신경을 쓰신 듯 했다. 그래도 그녀의 속을 우리도 어른들도 모두 감싸주지는 못했나보다.
편지라도 써주고 싶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던 그 친구에게 5장 분량의 편지를 쓰고 불에 태웠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 지금 하늘에서 잘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큰 사건들이 많이 있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만 줄입니다.
역시 스팀잇이란 곳은 내 마음한켠의 이야기들을 꺼내게 만드네요.
이곳에서라도 풀게되서 속 시원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그럼 다음에 또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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