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시계획 전공이라고 하면 의외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네 전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 도시계획, 그중에서도 도시경제와 도시 에너지 정책쪽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어쩌다가 이쪽 길로 들어선 것 뿐이죠...
각설하고, 최근 집값 고공행진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계획학도로서 놓칠 수 없는 대목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던 것 같습니다. 이게 정치적으로 의도된 여론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부동산 가격의 본질적인 부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경제학의 기초를 몰라도 부동산의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을 이끌어내는 이면의 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주거환경이나 교통을 얘기하는 분도 있고, 투자가치를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면 그 이면에는 국가나 지역의 경제력이라는 큰 동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혹시 아래의 그래프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폰 튀넨의 고립국 모형에 기초한 입지론입니다. 어려운 설명은 넘어가고 간단히 말하면 임대료(지대)는 생산력과 비용 그리고 교통비가 결정하고 그에 따라 토지이용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생산성이 높은 산업일수록 중심지에 들어서고 생산성이 낮은 산업은 주변부에 위치한다는 것이죠. 서울을 예로 든다면 시청에는 금융산업이 주를 이루고 외곽지역에는 주거지나 서비스 시설이 위치하는 것이죠. 물론 서울은 강남이나 여의도, 잠실과 같은 부도심도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하긴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지대는 동반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총생산이 증가하면 전체적인 부동산 가격도 올라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고공행진, 특히나 강남과 같은 핵심지역의 지가상승은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조금 어려운 경제학 개념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요소대체라는 것입니다. 요소대체는 한 생산요소가 비싸지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른 생산요소로 대체해서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상승시킨다는 것입니다. 인건비가 쌀 때는 인부 100명에게 삽을 쥐어주고 작업을 하다가 인건비가 비싸지면 그냥 포크레인 1대로 일을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이런 경우 노동력(인부)이 자본(포크레인)으로 대체되었다고 하죠.
요소대체를 토지와 토지가 아닌 것으로 양분해서 본다면, 땅값이 비싸지면 토지가 아닌 것들을 투자해서 토지를 더 밀도있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땅값이 싼 미국에서는 건물이 나지막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층건물이 주를 이루은 것이 한 예입니다.
대략 이해가 되셨으면 중요한 부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 국가나 지역의 경제력이 상승하면 지대도 상승하게 되는데, 이 때 생산자들은 비싸진 지대를 토지 외 요소로 대체하면서 생산성을 추가로 끌어올립니다. 결과적으로 위의 폰튀넨 입지 그래프는 직선이 아니라 승수효과 때문에 아래와 같이 제곱형태로 중심부로 갈 수록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즉, 경제가 성장하면 중심부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저는 과거 참여정부에서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성장에 대한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에 주가도 고공행진을 했고 경제가 눈에 띄게 성장했죠.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아직 효과가 나타나기엔 이르기에 그 원인을 특정짓기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먼저 도심 외곽지역이 투기로 인해 지나치게 상승한 것을 현 정부가 잡아주어서 수요가 중심부로 몰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즉 위 그림에서 보면 꼬리 부분이 두꺼웠던 것을 중심부로 몰리게 만든 정책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주변부의 지가는 내려가기에 "조금 멀지만 싼 집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봅니다. (이전에는 투기 때문에 멀건 가깝건 집값이 비쌌죠) 이렇게 정상화를 먼저 시켜놓아야 지방균형발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부를 나눠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북한과의 평화체제 추진이나 경제정책의 여러 효과도 멀지 않은 시기에 부동산에 반영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 사이에 투기라는 요소로 인해 가격에 부침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경제정책을 제대로 펴는 정권에서는 중심부의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상승합니다.
물론 주거는 필수재이기 때문에 집값이 무조건 상승하는 것은 좋지많은 않습니다. 그래서 동시에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부동산 정책(임대주택 등)도 함께 강화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입니다. 이런 부분은 이미 많이 논의되고 있어서 여기에서는 크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 정부는 딜레마 상황입니다. 경제를 성장하니 집값이 따라서 올라버리는거죠. 근데 요즘 기사들의 논조는 경제는 죽어가고 집값은 올라간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기사들의 관점을 의심스럽게 바라봅니다. 경제가 죽으면 집값도 함께 죽게 되어있습니다. 아마 둘 중 하나는 거짓으로 판명날 것입니다. 경제가 호황이 되거나, 집값이 떨어짐으로써요. 저는 전자가 더 가능성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만약 코스피가 3000이 된다면 그 때는 집값이 비싸다는 기사들로만 도배될 지도 모르겠네요.
두서없이 야밤에 끄적여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