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위대한 일

중국 백두산 스키장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나의 딸 아이가 생겨난 그 곳.

결혼 후 신랑과 처음 스노우보드를 배웠는데 체력장 5등급인 나는 신랑 친구들과 신랑이 금새 배워 코스를 계속 돌고 있는데 그 옆에서 보드로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신랑 친구들까지 있었던 터라 나는 자존심이 점점 상하고 신랑도 면박 주고 진짜 오기로 스키 강사의 가르침에 집중 또 집중하여 겨우 미끄럼틀 신세를 면해 보드로 낙엽을 탈 수 있게 되었다.^^

부드러운 눈 위에서 떠다니는 그 자유로움이란...하늘을 나는 것 같았고 그 후로 여러번 구른 덕에 S자 코스까지 마쳤다. ^^

그 후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년동안 스키장을 못 가게 되어 S는 고사하고 낙엽도 기억이 나질 않아 또 미끄럼틀을 타게 될 쯤 다시금 스키장을 찾았는데 그때 찾은 스키장이 중국 백두산 (장백산) 스키장이었다.

한국 스키장도 좋았지만 중국이 땅이 넓어 그런지 더 확 트이고 더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기분이었다.
(밤에 산책시 나름 눈을 즐긴다고 영화처럼 T자로 몸을 뒤로 풀썩 하고 눈에 몸을 맡겼는데 눕고 보니 내 머리 옆 쌓인 눈 밑에는 큰 돌이 있더라...)

암튼, 그리하여 다시 보드로 미끄럼틀을 타게 된 나는 중국인 스키 강사를 불러 가르침을 받게 됐는데, 어려보이는 그 남자 스키강사는 처음에 나를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나를 가르치는 사람은 대부분이 인내심의 한계를 겪기에 그 젊은 스키강사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를 가르치며 점점 표정이 굳기 시작했고 결국 눈비탈에서 구르고 있는 나를 버려둔 채 혼자 저 멀리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더라...
(내가 원래 말귀를 잘 못 알아듣기는 하지만 스키용어를 중국어로 듣다보니 그 용어 자체를 못 알아들어 심각하게 그 강사의 말과는 반대로 보드를 움직였다,,)

순간, 나를 눈비탈에 버려둔 채 혼자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나와 다른 국적의, 나이도 어린, 그를 보니 나도 그의 그런 행동으로 기분이 안 좋을 뻔 한건 사실이었지만, 순간 나의 마음으로 그가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나같은 사람을 가르치려니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
하라는대로 하긴 커녕 계속 정반대로 하고 있으니 저렇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날 버려둘만도 하지...란 생각이 드니 첨엔 기분이 나쁠 뻔 했는데 순간적으로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나의 단점을, 내가 얼마나 말귀 못 알아듣는 답답한 사람인걸 내 스스로가 잘 알기에 그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저 멀리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날 버려둔 채 홀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그를 찾아가
"제가 진짜 말귀 못 알아듣죠? 너무 답답하시죠~~근데 말씀해주신대로 하다보니까 아까보단 조금 되는 것 같아요. 한번 와서 봐주세요~^^"

그랬더니,
그 뒤에 바뀐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렸던, 삶에 회의가 가득한 (아마 나로 인해 폭발한 것이지 얼마나 그때까지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들 때문에 가르치는데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환한 미소를 보이는 것 아닌가.

그 미소는 그가 처음에 나에게 보였던 영업적인 그런 만면의 미소가 아니라 정말 세상이 환해지는 그런 밝은 미소였다...!

그 후 그는 내가 말귀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지 않냐고 미안해하는 나에게 사실은 그래도 오랜만에 배웠는데 이 정도면 잘 따라오는 편이라고 (진짜니?..) 했고 나보다 못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어느새 강습 두시간이 다 되어 보드를 타고 나를 데리고 슉 같이 내려오는데 내려오는 내내 그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헤어질 때는 오늘 잘 했다며 하이파이브까지 나에게 신청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한 게 있길래
이 사람은 삶에 회의가 가득한 얼굴에서
갑자기 온 세상을 밝히는 듯한 미소를
나에게 보여준 것일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는 것.

그것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위대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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