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 회사 그만둡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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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세르크’라는 만화가 있다. 그 만화는 ‘그리피스’와 ‘가츠’ 두 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피스는 근사한 외모에, 전투에 능하고, 부하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리더십까지 갖춘 인물이다. 반면 가츠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전장에서 싸움을 익히며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법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법은 전혀 알지 못하는, 마치 동물 같이 거친 인물이다.

청년으로 성장한 가츠는 검술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용병으로 전장을 누빈다. 그렇게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어느 날이었다. 운명처럼 ‘그리피스’를 만난다. 한 전장에 용병으로 참전한 가츠는 상대편 장수를 단 일합으로 제압한다. 그 장면을 본 그리피스는 가츠를 얻고 싶어 한다. 영민한 그리피스는 직감적으로 가츠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가츠는 자신의 군대로 들어오라는 그리피스의 제안을 거절한다. 잡으려는 자와 떠나려는 자는 승부로 대화를 대신한다.

결과는 가츠의 완패. 빠르고 현란한 그리피스의 검술 앞에 가츠는 난생 처음 완벽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패배로 인해 상처를 입고 기절한 가츠는 그리피스가 이끄는 ‘매의 단’이라는 용병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깨어나게 된다. 깨어난 그는 꽤나 놀란 모양이다. 가츠가 깨어나서 본 그리피스의 군대, ‘매의 단’의 모습은 모두 친구처럼 어찌 보면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어야 하는 냉혹한 전장을 누비며 살아온 그에게 ‘매의 단’ 사람들의 가족 같은 모습은 그에게 적지 않게 충격을 주게 된다.

가츠는 처음 느껴보는 그런 가족 같은 느낌에 완전히 매료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사랑을 줘 본적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것은 당연한 끌림이었을 게다. 가츠에게 그리피스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대장이나 두목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단순한 두목이나 대장 그 이상의 어떤 동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가츠는 매의 단의 일원이 되었다. 가츠는 그리피스의 명령을 거부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위험한 전투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는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불리한 전쟁에서 늘 선봉에 서서 승리를 가져 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츠는 매의 단이 용병으로 속해있는 나라 공주와 그리피스 간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된다.

“꿈을 의지하고, 꿈에 고통 받고, 꿈에 살고, 꿈에 죽는 그리고 꿈에 버림받은 후에도 마음 속 깊이 끊임없이 맴도는, 남자라면 그런 삶을 한번은 마음에 그릴 것입니다. 꿈이라는 신의 순교자로서의 일생을... 태어났으니까 하는 수없이 사는 그런 삶,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
“매의 단, 당신의 친구 분들도 그런 당신의 매력에 끌렸겠지요?”
“그들은 우수한 부하입니다. 제가 그리는 꿈을 위해서 몸을 맡겨준 소중한 동료. 하지만 친구와는 다릅니다. 제게 있어서 친구란 결코 남의 꿈에 의지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강요받는 일없이 자신의 사는 이유는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자, 그리고 그 꿈을 짓밟는 자가 있다면 전력을 다해 대항하는... 설령 그것이 제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제게 있어 친구란 그런 대등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가츠는 멍한 표정이다. 충격을 받았다. 가츠 자신에게는 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가츠는 그리피스의 꿈을 위해서 헌신하는 존재이지 자신만의 꿈은 없다는 깨달았다. 가츠는 그리피스와 동등한 입장에서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그리피스의 종이 아니라. 그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 장면의 화면이 어두웠기 때문이었을까? 컴퓨터 화면으로 비치는 내 모습과 화면 속의 가츠의 모습이 겹쳐지나 갔다. 가츠가 마치 나처럼 느껴졌다.

“태어났으니까 하는 수 없이 사는 그런 삶,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라는 그리피스의 사자후에 나 역시 가츠처럼 멍한 기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삶은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사는 그런 삶이었다. 가츠와 나는 참 많이도 닮아 있다. 나 역시 회사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변명하지 않고 했다. 결과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적지 않은 성과를 내며 달려왔다. 때로는 윤리적이지 못하다 생각되는 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 나의 그리피스는 회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회사는 나를 대신해 꿈을 꾸어주는 존재, 결코 넘을 수 없는 존재, 그리고 보호 받고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전능한 존재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가츠가 그리피스의 이야기를 듣고 멍하니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것처럼, 나 역시 꼼짝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회사의 굴종적 부하라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있는 직장인이 있을까? 직장에 복종하고. 직장의 종으로 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직장에 거는 사람에게 자신만의 꿈이 있을까? 임원이 되는 것?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 그런 것들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직장과 대등한 존재로 설 수 있는 월급쟁이가 있을까? 상사 앞에서 사장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직장의 노예고 종놈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경솔한 이야기도 극단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노예와 종놈이 별 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노예고 종놈 아니던가. 거기에 무슨 미사여구가 더 필요할까? 밥벌이를 조금 넉넉히 하는 큰 집 종놈이 있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밥벌이조차 신통치 않는 작은 집 종놈이 있을 뿐이다. 직장인은 노예라는 사실을 아프지만 이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작해야 회사의 매출 목표 따위가 내 꿈이 되도록 놓아두지 않기로. 이제 더 이상 누가 나를 대신해서 꿈을 꾸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놓아두지 않을 생각이다. 그건 이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내 삶은 내가 꾸려나갈 작정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련다.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살면 좋지? 누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안 살겠어? 남의 눈치 안보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 다수의 평균적인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논리에 나는 얼마나 오래 설득되었던가.

다행히, 이제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종으로 산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주인으로서의 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불행하다는 것이 나의 불행한 삶을 정당화, 합리화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지 않은가. 단 한번 사는 것이니, 자신이니까 살아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고 싶다. 나는 그리 살기 위해 직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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